The right to live noblely 고귀하게 살 수 있는 권리
- peters50119
- 2021년 11월 21일
- 3분 분량
2021.11.21 주일설교 _ 송기석 목사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신 것을 알고 있어야 마땅합니다. 그저 자신의 운명을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 중의 한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거절하셔야만합니다. 하나님은 그 누구도 죽음을 통해 데려가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26은 멸망 받게 될 마지막 원수는 사망이다 고 말씀합니다. 죽음(사망)은 원수입니다. 죽음은 이미 패배(defeated) 당했지만 끝에는 멸망(destroy)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음을 원수라고 부르신다는 의미는 사람들을 죽음을 통해서 빼앗아 가는 장본인이 하나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취하여 가신 것은 성경에 단 세 경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어느 것도 죽음을 통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취하여 가신 첫 번째 사람은 애녹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없어졌더라.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셨음이라(창5:24). 에녹은 주님과 계속해서 교제해 왔으며, 하나님은 에녹을 데려가셨습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증거를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가 죽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데려가실 경우, 항상 살아있는 채로 데려가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리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자신을 데려 가실지에 대한 ‘내부 정보(inside information)' 즉 직관적 지식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옮겨지기 전에 알았고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증거를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셨으므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그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다는 이 증거를 지녔느니라(히11:5). 다음은 엘리야입니다.(왕하2:10-11). 엘리야는 그가 떠날 것임을 직관적으로 알았고, 그래서 엘리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엘리야의가 죽음을 통하지 않고 옮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에녹과 엘리야 모두 일이 일어나기 전에 자신들이 옮겨질 것을 알았습니다. 세 번째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알지도 못하셨음에도 우리를 위해 죄가 되셨고(고후5:21), 죄인처럼 음부에 끌려가셨지만, 성령의 능력으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 후 사십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올라갈 준비가 되신 후에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아계신 채로 데려가셨습니다. 주께서 이런 일들을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보는 데서 위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이 그들의 시야에서 주를 가리더라(행1:9).
예수님은 요11:25-26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 것이며, 또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인 죽음을 말하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절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이 말씀을 믿고, 전하며, 또 그 위에서 행동하게 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세대가 교회의 휴거를 보게 될 교회의 세대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딤후1:10은 그러나 이제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그것이 드러났으니, 그는 죽음을 폐기하시고 복음을 통하여 생명과 불멸을 밝히셨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누구에게나 젊음을 회복시킬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암에 걸려 3개월만 살 수 있다고, 의사에게 말을 들었기 때문에 암으로 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선택도 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저 그에게 전해진 모든 것을 받아들일 뿐입니다. 그는 선택할 권리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과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는 암이나 질병으로부터 죽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의사의 판결을 우리 생명에 대한 최종 선고로 받아들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거듭난 자로 살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예수 이름으로 살기로 선택한다! 나는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고 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대로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살 수 있는 권리뿐만 아니라, 고귀하게 살 수 있는 권리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귀하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존재(nobody)가 아닙니다. 우리 각자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경 바디메오의 예화처럼 한사람의 부름(외침)이 예수님을 멈춰 서게 했다면, 한사람의 부름에 우주의 하나님이 멈춰 서신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리가 고귀하기 때문에 우리의 부름이 하나님께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기시켜줍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러한 유익을 이용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문제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고통당할 뿐입니다. 일과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보지만 왜 이런 변화의 일들이 일어나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이 상황들을 바꿀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때 일은 더 악화됩니다. 그리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습니다. 잘못된 고백은 항상 “그러나(but)"로 마침표를 찍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성도님께서는 바른 선택을 해본 적이 있습니까? 지체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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