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삶에서 가장 비싼 것 — 평안
최종 수정일: 9월 8일
20260906 / 송기석 목사 / 새로운 피조물의 리얼 라이프 모델! 재정적 자유! 신약교회 개척!
오늘날 세상에서 평온(peace)은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 가운데 가장 값비싼 것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오랜 세월 열심히 일하며 경력을 쌓고, 성공을 좇고, 가족을 부양하고, 각종 청구서를 지불하고, 수많은 책임을 감당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신의 행복까지 희생하면서 살아갑니다. 가려고 계획만 해놓고 결국 가지 못한 휴가가 있고, 언젠가 누리려고 돈을 모아놓았지만 정작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계속 말합니다. "언젠가는 속도를 늦추고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하지만 현실에서 삶은 흔히 일하고, 힘겨워하고, 책임을 감당하고, 살아남는 과정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정작 삶을 살아가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때로 진정한 성공은 더 많은 돈을 갖는 것도, 더 큰 집을 소유하는 것도,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때로 성공이란 시끄럽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 잠시라도 평온을 발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외로움(loneliness)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평온(peace)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고요함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견딜 수 없는 공허를 느끼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깊은 쉼을 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조용한 장소가 아니라 조용한 마음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마음, 그 평안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바로 그 평안에 대해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27절에서 말씀하십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어떻게 주셨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주신 평안을 어떻게 취하는가? 이 두 질문에 답이 없으면, 우리는 평생 평안을 구하기만 하고 정작 누리지는 못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떻게 평안을 주셨는가. 요한복음 14장 25-26절에 있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리고 곧바로 이어집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즉 예수님이 주신 평안의 통로는 말씀과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에 생각나게 하실 때, 우리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을 다시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평안이 임합니다. 이것은 근거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이미 말씀으로 완성된 선물입니다. 예수님은 "문제가 다 해결되면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노라" 이미 주셨습니다.
둘째, 우리는 이 평안을 어떻게 취하는가. 주신 것을 취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는 흔히 맡긴다고 기도하고 10분 뒤에 다시 가져옵니다. 취한다는 것은 한 번의 감정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내려놓는 훈련입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순서가 중요합니다. 상황이 먼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먼저 지켜집니다.
그러기 위한 실제적인 원리는 이것입니다. 책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고, 믿음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병원에 가야 하면 가고, 준비해야 하면 준비하십시오. 그러나 결과, 상대방의 마음, 내일 일어날 일까지 붙들려 하면 책임이 염려로 변합니다.
도입부에서 이야기했던 그 "언젠가"를 기억하십시까. "언젠가는 편히 쉴 수 있을 거야." 그러나 그 언젠가는 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언젠가 평안을 주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이미 주셨습니다.
같은 고요함을 외로움으로 만들 것인가, 평안으로 만들 것인가는 그 고요함 속에 누가 함께 계신지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긴 짐을 다시 가져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내일을 오늘 미리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이 순간, 그 평안을 믿음으로 취하여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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