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왜 그 복음대로 사는 사람은 적은가?
최종 수정일: 10월 14일
20261011 / 송기석 목사 / 새로운 피조물의 리얼 라이프 모델! 재정적 자유! 신약교회 개척!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진리를 알면서도 왜 삶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까요? 오늘의 질문은 성경을 더 많이 가르치는 방법이 아니라, 아는 말씀이 어떻게 삶의 기준이 되어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모습을 나타내게 할 것인가입니다.
1. 왜 아는 대로 살지 못합니까 고린도 교회는 지식과 은사가 넘쳤지만,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고전 3:1)고 했습니다.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식과 성숙은 같지 않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고전 8:1)라는 말씀처럼, 사랑으로 이어지지 않는 지식은 자신을 높이는 도구가 됩니다.
야고보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고 말합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은 감동과 깨달음을 변화로 착각합니다. 말씀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며, 거울은 고치려고 보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복음을 알면서도 사람이 두려워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물러났고, 바울은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갈 2:14) 그를 책망했습니다. 사람은 아는 대로만이 아니라, 그 순간 무엇을 두려워하는가에 따라 행동합니다. 부자 청년도 영생을 구하면서 재물 앞에서는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2). 우리는 진리를 알고 싶은 만큼, 그 진리대로 삶을 바꾸고 싶어 합니까?
2. 말씀은 어떻게 삶이 됩니까 선한 삶은 구원의 대가가 아니라, 은혜로 새롭게 된 사람에게서 나타날 열매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그 열매는 한 번의 깨달음이 아니라 훈련으로 맺힙니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변화 또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롬 12:2)라는 말씀대로 옵니다. 넘어져도 그때마다 말씀으로 돌아와 다시 믿음으로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복음은 삶으로 보여져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교훈만이 아니라 삶을 보았습니다.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딤후 3:10). 예수님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5)고 말씀하셨습니다.
3. 목표는 그리스도의 형상입니다 바울의 목표는 성도들 안에 그리스도가 형성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 4:19). 그래서 목회는 가르침에 더해 돌보고, 권면하고, 기다리고, 바로잡는 수고입니다. 더딘 변화를 함부로 판단해서도, 미성숙에 머물게 두어서도 안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은 우리의 정체성이고,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신으로서 그분을 나타내는 것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고후 5:20). 그 가장 중요한 열매는 사랑입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
고린도 교회와 야고보, 베드로와 부자 청년, 바울과 디모데의 이야기는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복음을 얼마나 많이 아는가”에서 “내가 아는 복음이 오늘 나의 삶을 얼마나 다스리고 있는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 관계와 재정, 일터와 가정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나야 합니다. 복음을 아는 것에서 복음으로 사는 것으로, 말씀을 듣는 것에서 행하는 것으로, 은혜를 받는 것에서 흘려보내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설명하는 것에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이 삶의 실제가 되게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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