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먼저 말한 아름다운 원리
최종 수정일: 10월 5일
20261004 / 송기석 목사 / 새로운 피조물의 리얼 라이프 모델! 재정적 자유! 신약교회 개척!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는 내가 세상에 내보낸 것이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 원리를 이미 분명하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도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고 했고,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느니라"(고후 9:6)고 했습니다. 구약의 지혜도 같습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전 11:1). 신약교회는 이 말씀을 머리로만 알지 않고 실제로 살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 예루살렘과 안디옥, 돌고 돈 은혜 신약교회에서 이 속담을 가장 아름답게 보여주는 이야기는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 교회들 사이에 흐른 은혜입니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안디옥에 이방인 신자들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귀한 일꾼 바나바를 보냈습니다(행 11:22). 바나바의 섬김으로 안디옥교회는 크게 성장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행 11:26). 그런데 얼마 후 큰 흉년이 예언되자, 이번에는 안디옥 성도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행 11:29) 예루살렘을 도왔습니다. 예루살렘이 보낸 복음이 안디옥에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로마서에서 직접 설명합니다. 이방인 교회들이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연보를 모은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롬 15:27). 예루살렘에서 흘러나간 영적인 은혜가 물질적인 사랑이 되어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야말로 "What goes around comes around"의 가장 아름다운 성경적 모습입니다.
두 번째 이야기: 다비다, 베푼 사랑이 생명으로 돌아오다. 욥바에 다비다라는 여제자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녀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행 9:36)라고 소개합니다. 그녀는 가난한 과부들을 위해 손수 옷을 지어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병들어 죽자, 과부들이 베드로를 둘러싸고 울면서 "도르가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지은 속옷과 겉옷을 다 내보이거늘"(행 9:39) 그녀의 사랑을 증언했습니다. 그녀가 베푼 사랑이 공동체의 눈물과 기도로 돌아왔고,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그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행 9:42). 한 여인이 조용히 지은 옷 한 벌 한 벌이 결국 한 도시의 부흥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세 번째 이야기: 고넬료, 하나님께서 기억하신 구제 로마 백부장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2)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가를 바라고 베푼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행 10:4). 그의 구제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억하셨고, 그 결과 베드로가 그의 집에 와서 복음을 전했으며, 고넬료의 온 가족이 성령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베푼 것은 물질이었지만, 돌아온 것은 구원이었습니다.
네 번째 이야기: 빌립보교회, 채우시는 하나님 빌립보교회는 바울의 선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후원한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그들의 선물을 받고 이렇게 축복합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우리가 자주 붙드는 이 약속의 말씀은 사실 바울을 위해 아낌없이 베푼 교회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그들이 바울의 필요를 채웠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신약교회 성도들은 돌려받기 위해 베풀지 않았습니다. 다비다도, 고넬료도, 안디옥 성도들도 대가를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돌아옴은 반드시 같은 모양이 아닐 수 있습니다. 물질로 베푼 것이 구원으로, 옷 한 벌이 생명으로, 한 사람에게 준 기회가 교회의 유익으로 돌아왔습니다. 때로는 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행 20:35)는 말씀처럼, 신약교회에서 베풂은 손해가 아니라 복이었습니다. 은혜는 흘려보낼 때 마르지 않고, 오히려 더 큰 은혜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세상의 속담이 "베푼 만큼 돌아온다"고 말한다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베푼 것보다 더 크게, 더 아름답게 돌려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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